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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후기] <벌새> - 누가 이 소녀에게 돌을 던질까 (2019)

※ 이 리뷰는 다량의 스포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살던 집에서 독립영화관이 몰려 있는 종로구까지 걸어갈 만했다. 보고 싶은 독립영화관이 있으면 인디스페이스나 서울극장까지 걸어가서 독립영화를 자주 찾아 봤었는데, 거리가 멀어지니까 자연스럽게 독립영화를 자주 접하지 못했다. 영화를 보러 머나먼 다른 동네까지 가는 건 고역이더라. 그러다 <벌새>라는 독립영화가 호평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영화 소개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줄거리라곤 ‘1994,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와 마주한 14은희의 아주- 보편적이고 가장- 찬란한 기억의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작은 소녀의 성장기라고만 생각했다. 벌새는 세상에서 제일 작은 새로 알려져있었기 때문에, ... 작은 소녀가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이야기 정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까 우리가 겪어온 시대적 고통이 모두 녹아 있었다. 은희의 가족부터가 너무 리얼하지 않았나 싶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그와 싸우는 어머니, 폭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큰오빠, 미성년자임에도 남자친구와 성인처럼 연애를 하며 바깥으로 나도는 언니. 그 밑에서 은희는 제대로 된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큰다. 다행히도 나의 오빠는 온순해서 나를 때리지 않았지만, 내 친구네 오빠나 남동생들은 친구를 때렸다는 말을 줄곧 들었으며, 우리 아빠도 권위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가족의 모습이 참 많이 공감되더라.

 

 

 

그러다보니 은희는 어린 나이에도 담배를 피거나 콜라텍(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나... 클럽 같은 곳이었는데)에 가는 등의 비행을 일삼는다. 그 모습을 동경한 후배 유리가 친해지고 싶다고 접근하고, 은희는 유리에게 마음을 열다 못해 입술까지 줘버리지만 언젠가부턴 유리가 거리를 두는 게 느껴진다. 이유를 묻는 은희에게 유리는 말한다.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 은희가 입원한 병실에서 볼뽀뽀를 주고받은 사람치고는 참 매정한 말이지. 생각해보면 둘 모두의 감정이 사랑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친구와 다니던 한자학원의 영지쌤이 유일하게 은희의 마음을 알아준다. 그 선생님은 은희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맞지 말라는 조언까지 해주는 사람이었다. 은희가 담배를 피운다는 걸 짐작하고 담배까지 권하는 걸 보면, 제자가 바른 길로 가야만 한다는 것보다 자기 자신의 주체성을 잘 고수해나갔으면 한다는 게 교육철학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은희에게 말도 없이 한자학원을 그만두고, 영지쌤이 자발적으로 그만둔 게 아니라 학원에서 자른 거라는 사실을 깨닫곤 그때부터 이성을 놓아버린다. 덮어놓고 은희를 문제아 취급하는 가족들에게 은희가 반항하는 모습은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어쩌면 은희의 귀 밑에 난 염증도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相識滿天下 知心能機人).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까지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라는 명심보감의 구절이다. 영지쌤이 위태로운 은희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꺼낸 말인 것이다. 그런 선생님이 갑자기 증발하듯 사라졌으니 은희가 안 미치고 배길까.

 

 

영화 후반부에서는 성수대교 붕괴사건까지 다루는데, 은희의 언니는 늦잠을 자는 바람에 사고를 면했다. 그렇게 한숨 돌렸지만, 은희가 영지쌤의 집으로 찾아갔을 때 영지쌤이 그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은희의 오빠와 언니도 성수대교 사고로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슬퍼한다. 그리고 삼남매는 끊어진 성수대교를 바라본다.

 

 

은희가 떠들썩한 반 친구들 사이에 혼자 오도카니 서있는 장면에 영지쌤의 편지가 내레이션으로 깔리는 마지막 장면은 특히 먹먹하다. 방학 끝나면 연락한다며 스케치북을 보냈지만, 선생님을 위해 그림을 그려줄 수도, 연락을 할 수도 없었으니까.

 

 

, 박지후 배우의 다양한 얼굴을 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그저 유약한 중학생을 연기할 줄만 알았는데, 골목에서 담배를 피다가 자기에게 말을 거는 후배들한테 시선을 돌릴 때의 얼굴이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서 많이 놀랐다. 지금 네이버 영화 프로필 보면 영화 찍을 때보다 엄청 성숙해졌던데, 성인 연기도 많이 기대가 된다.

 

 

 

<벌새>

작고 여린 소녀의 처절하고도 찬란한 날갯짓

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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